공시가격의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끌어올리는 문제를 정부와 여당이 공론화했다.
사실상 증세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틀린 말은 아니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그 자체로 ‘증세 아닌 증세’다. 세금을 올리기 위해서는 세목을 새로 만들거나 세율을 높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법을 고쳐야 한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에게 증세는 가장 피하고 싶은 주제 중 하나다. 그러나 세금 산출 근거가 되는 공시가격을 올리는 것은 입법을 통하지 않고도 가능하다. 세입 증대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당·정의 이번 결정을 ‘꼼수 증세’로 몰아붙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주택가격 안정화라는 대전제 속에서 오랜 기간 논의되어온 주제다.
다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을 높여 주택시장에 매물을 내놓게 만든다는 정부 정책 방향과 궤를 같이한다. 1주택자라 할지라도 공시가격이 9억원을 넘길 경우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에 오르고, 다주택자는 합산 6억원을 넘기면 종합부동산세를 납부해야 한다. 정부는 다주택자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야 시장 내 매도 물량이 늘어나고 부동산시장이 안정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종합부동산세 감면 대상 축소 등 보유세 강화 정책을 내놓은 것과 방향이 같다.
반면 공시가격 현실화에 우려를 표하는 이들은 ‘저소득 1주택자가 피해를 본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공시가격이 단순히 부동산 보유세만 건드리는 게 아니라 60여 가지 행정체계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상속세, 증여세, 건강보험료, 기초연금, 장애인연금, 장학금, 재건축초과이익부담금 등에 영향을 끼친다. 소득이 부족한 이들로서는 연금 수령에 불리함을 겪고, 복지서비스에 지불하는 기여금(보험료 등)이 늘어날 수 있다. 세금 증대만큼이나 준조세 영역에서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공시가격이 오르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은 이를 ‘서민 부담 가중’이라는 논리로 활용한다.
그런데 부동산 문제, 특히 자산 보유세에 대한 문제를 다룰 때에는 ‘서민’의 기준에 혼선이 생긴다.
가령 집을 구하진 못했지만 안정적인 직장에서 맞벌이로 일하는 고소득 부부는 4인 가구 중위소득(474만9000원) 이상 노동소득을 올릴 수도 있다. 이들에게는 소득 불평등보다 자산 불평등이 더 중요한 문제이지만 막상 신규 주택 신혼부부 특별공급 등 정부의 주거복지 로드맵에서는 소외되기 일쑤다. 최근 30대 사이에서 확대된 ‘영끌 현상(영혼까지 끌어 모아 집을 산다는 뜻)’도 이들 ‘고소득 저자산층’에서 주로 두드러졌다. 공공임대주택을 비롯한 주거정책 초점을 ‘저소득 저자산’에 맞춘 결과다.
결국 이들을 포함한 중·저자산층, 무자산층에게는 민간 주택시장의 가격 안정이 최우선 과제다. 부동산 보유세 부담을 늘린다는 건 소득수준과는 상관없이 자산 수준에 따라 부담을 가중한다는 의미다. 자연스럽게 ‘고소득 저자산’과는 정반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 ‘저소득 고자산층’의 반발이 거세다. 서울 아파트에 자가 거주하면서 은퇴한 이들이 대표적이다. 자산에 대한 시장 평가액은 급증했지만 세금을 낼 ‘현금’이 넉넉하지 않은 경우다.
일부 언론이 정책 희생양으로 부각하는 ‘저소득 고자산층’의 반발을 현 정부에서는 ‘공시가격 6억원 이하까지는 재산세 감면’이라는 카드로 달래는 중이다. 당초 여당은 감면 대상을 공시가격 9억원 이하까지 늘리려고 했으나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기획재정부의 주장(6억원 기준)을 받아들였다. 2020년 10월 기준, 서울 아파트의 중위 매매가격은 8억5695만원(한국감정원 발표)이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90%까지 오를 경우, 서울의 아파트 중 상당수는 재산세 감면 기준을 넘을 수 있다.
공시가격 현실화가 향후 90%까지 조정될 경우 사회와 정부는 어떤 효능감을 얻을 수 있을까? 국토연구원이 2014년에 발간한 ‘부동산 보유세 변화의 경제적 파급효과 분석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의 재산세 부담은 평균 45%, 종합부동산세 부담은 평균 58%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수 규모 역시 2014년 당시 기준으로 5조9000억원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어 증세를 통한 재정 확충 규모도 만만찮을 것으로 전망된다.
공시가격이 불러올 경제적 여파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공시가격 현실화에 반발하는 이들은 “왜 하필 지금인가. 코로나19로 경제가 힘든데 부담을 가중시킨다”라는 논리를 앞세운다. 그러나 앞선 보고서에서 국토연구원은 “고자산 계층에서 민간 소비가 줄고 건설 부문의 투자가 감소하는 부정적 효과가 존재하지만, 오히려 중·저자산 계층과 무자산 계층에게는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는 긍정적 영향이 있다”라며 현실화율을 높이는 일이 경제 전체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분석했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1989년 공시지가(토지) 제도를 도입한 이래 수차례 실패한 전력이 있다.
매번(1989년, 1993년, 2000년, 2005년 등) 정부는 현실화율을 높이겠다며 대대적인 정책을 발표했지만 그때마다 토지 및 주택가격 급등으로 인해 공시가격이 시장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정부는 과거와 달리 거래 데이터 축적·분석 기술이 발전해 10~15년 동안 현실화율을 90%까지 맞추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여전히 공시가격 산정 기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고, 이에 대한 개별 소유주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2018년 공동주택(아파트) 공시가격 이의신청 건수는 1290건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그 건수가 3만7410건으로 늘어났다. 대부분 공시가격을 더 낮춰달라는 요구였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내년부터 구간에 따라 연평균 3%포인트씩 확대된다. 세금 부담이 높아지는 고자산층과 재산세 감면 기준(6억원)을 넘어서는 중산층의 이의신청도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10년간 예정된 ‘증세 아닌 증세’의 성공 여부는 결국 다주택자가 얼마나 집을 내놓는지, 이를 통해 얼마나 주택시장이 안정화되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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